"반란의 도시" 에세이

반란의 도시

어느 세련된 맑시스트 할아버지

 송시원


사고를 갱신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려고 해도 쉽게 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은 자아에 인이 박혀서 경로의존성을 발휘하고 만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에 주저하거나 반감을 갖거나 또는 그 반대로 반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사고와의 정합성에서 기인할 때가 크다.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사고를 끊임없이 갱신한 어느 맑시스트 할아버지의 세련된 분석과 군데군데 경로의 흔적들이 묻은 전략들로 이루어져있다. 1935년생의 하얀 백발의 지리학을 공부한 맑시스트는 지리학을 토대로 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선보이고, 전통적 좌파와 아나키스트를 섞어내는 광범위한 전략을 안내한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하비는 서론에서 르페브르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소개한다. 사회적 역공간, 사적 공간과 공공 공간 사이의 경계가 소멸된 공간. 하비는 제4장 지대의 기법에서 독점지대의 모순을 통하여 희망의 공간을 소개하는데, 이 공간을 르페브르의 헤테로토피아, 즉 전환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비의 희망의 공간은 쉽게 말해, 독특한 것들이 잘 팔리기 때문에 독특함과 상업성이 만나는 공간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역사가 고여 있는 공간, 문화와 예술이 만연한 공간에 화폐가 모여드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곳에서 희망의 공간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공간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선 신촌 차 없는 거리다. 신촌의 대항운동 세력은 2008년부터 연세대학교 앞의 명물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자는 움직임을 가져왔다. 당시 상인들은 차의 이동과 화폐의 이동을 같이 보면서 차 없는 거리를 극렬히 반대하였는데, 신촌의 계속된 불황 속에서 2014년 차 없는 거리를 받아들였다. 탁월성과 독착성이 상실된 신촌에 탁월성을 도입해 지대를 독점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덕에 신촌은 약 100평여의 차 없는 공간이 생겼고 주말에는 대중교통을 포함해 차량의 전면 이동 금지가 시행되고 있다. 이 곳은 하비가 말한 희망의 공간이자 르페브르의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을 메운 것은 결국 일시적이고 상업적인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그 공간을 문화 예술로 메우는 작업, 정치적 공유재(하비는 공공공간과 공유재를 구분한다)’로 만드는 작업이 조속히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정책의 영역으로서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화폐경제, 소비경제를 지탱하고자 하는 보수진영의 논리는 기본소득을 통해 창조, 해방,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좌파진영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기본소득은 지대를 독점하기 위한 모순이 만들어 낸 희망의 공간일 수 있다. 기본소득으로 어떠한 욕망을 일으키고 실현시킬 것인지의 문제는 정치적 공유재를 양산하는 작업과 궤를 같이한다.

 

독점지대의 모순과 희망의 공간은 맑시스트 할아버지의 세련된 통찰력의 정점을 이루는 내용이다. 자본이 사회를 활용하는 법, 사회가 자본에 적응하는 법, 자본과 사회가 공존하는 법. 반자본주의 투쟁이라는 용어를 수시로 사용하는 하비의 책을 읽으면서, 자본에 반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자본은 반대해야 하는 실체인가, 자본에 반대하는 우리의 실체는 무엇인가. 자본은 우리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자본주의는 우리 내면의 어떤 욕망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외침은 자본에 반대하는 것, 우리의 어떤 욕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공생할 수 있는 힘, 우리의 다른 욕망을 함께 맞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수준적 · 다층적 접근

 

하비는 다수준적, 다층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지역 사회운동에 매몰되는 진보 진영에 비판을 가한다. 쟁점에 따라 접근해야 하는 수준에 차별이 존재하므로 수직적 · 위계적 질서를 외면하지 말고 다수준적, 다층적 관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하비는 국가 중심의 공산주의 실험과 사회민주주의 실험이 우울한 과거를 보였다는 진단에서 국가의 해체를 주장하는 아나키스트 일부 진영에도 비판을 가한다. 하비는 코퍼라티즘적 의사결정혹은 머레이 북친의 연합주의’, ‘자치체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를 그 다수준적 관점으로 제시한다.

세련된 맑시스트 할아버지는 국가기구가 독점적 권한을 지닌 과거 공산주의 실패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새로운 다극적 거버넌스 형성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획은 도시권을 강조하는 하비의 생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전면에 노동권을 배치하고 자본과의 전선을 치는 전통적 좌파의 전략은 다극적 거버넌스 형성에 적합하지 않다. 노동 부문 이외에 다양한 방면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러한 네트워크가 국가 등과 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들을 연합할 수 있는 수준의 상위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이러한 상위 네트워크를 토대로 부문별 칸막이를 뛰어넘고 지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민족, 노동, 여성, 기후, 동물의 다양한 요소가 혼재된 도시권의 집단적 역동성은 다극적 거버넌스 형성에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전환도시 네트워크를 준비해야 한다. 도시권 운동은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다. 보다 살기 좋은 동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 공유지를 확대하고 도시의 네트워크를 회복하는 움직임들. 각 마을과 공동체에서 진행되는 운동들의 상위 네트워크를 결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단체들 상호간의 자극과 협력이 될 것이고 집단적 권리인 도시권을 선언하고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자치체 회의의 네트워크로서 부문별, 지역별로 연대하고 연합하는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전환도시 네트워크는 다수준적, 다층적 접근의 출발이 될 것이다.

 

도식적 접근과 안티테제의 한계

 

세련된 맑시스트 할아버지는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훌륭한 통찰력과 책임감 있는 다수준적 전략을 소개하지만, 성급한 범주화와 지나친 도식적 접근으로 인하여 계급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하비가 비정규직 노동자(프레키아트로 해석되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를 계급적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규직 일자리가 급감하는 현 시대에 중요한 분석이다. 그러나 계급적 구분을 통한 무리한 조직적 일체화 시도와 이분법적 사고는 대안적 세계 구성에 한계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99%는 각자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활동하고 이들을 상징을 넘어 실체를 통하여 하나로 범주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자본을 내재화한 서민들은 대안세계가 아닌 계급상향을 지향할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레이어를 걷어내고새로운 레이어를 설치하는 일은 지난하다. 자본주의라는 레이어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레이어를 덮어 씌어야 한다. 두 개의 다른 세계를 병존하게 하고 그 둘의 경쟁, 갈등, 공존하게 해야 한다. 티끌을 허용하지 않는 변혁 보다 새로운 버전을 통한 전환을 현실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하비의 유물론적 계급론을 뛰어넘어 보편적 가치와 인간의 욕망에 더 가까운 전략과 기획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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